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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싶다
Want to 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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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를 찾아서 1 ..... 산을 봄(북한산의 일부)
참으로 산은 아름답다.
나는 제전 출품 제작 때문에 향토의 문틋한 흙의 향기와 관(觀)하면서 걷게 되었다.
역시 나에게는 적토(赤土)를 밟는 것이 청순(淸純)한 안정을 준다. 참으로 고마운 적토의 향기다.
전 조선에서 이름 있는 대구의 더위에 못 견디어 팔월 초에 경성(京城)에를 왔다.
그야말로 경성은 조선의 수도다.
내가 가장 놀란 것은 적(赤) 청(靑)의 지붕 빛이다. 참으로 많다.
이것은 오로지 문화생활의 진보를 말함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보기 좋은 풍경이다. 또 이의 배경을 이룬 산들의 아름다움이여!
형태로든지 색채로든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웅장한 감각을 준다.
나는 더위도 고락(苦樂)도 잊고 콘티와 스케치북을 내어 들고 미숙한 선을 그었다.
한 장의 스케치를 하루의 일기 삼아.
_『동아일보』, 193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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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를 찾아서 2 ..... 창동의 하루
저 산.
저 하늘.
저 구름.
참으로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양자(樣姿).
산빛은 거뭇한 '블루시안'과 모래빛 '네에프스에로'와 연분홍류가 무게 있는 색채를 보인다.
게다가 하늘빛은 새맑은 투명한 '코발트', 여기에 한 구름 조각이 변화(變化) 불(不)히 움직인다.
특히 아름다운 것은 저녁 무렵의 풍부한 회색조의 색채다.
선몽(選夢)일사. 아, 아름다운 빛은 장시간 바라볼 수 없는 변화 많은 색채다.
한 장 그림을 그리는데도 순간적 감수성을 머리에 지그시 넣지 않으면 얼토당토 않은 조자調子의
그림이 되리라고 생각하였다. 참으로 아름다우나 어렵다.
오늘도 스케치 상자를 둘러메고 창동(倉洞)이란 마을에 왔다. 땀은 등허리를 적셔 흐른다.
밤나무 그늘에 쉬면서 원경(遠景)을 바라본다. 새가 운다. 들국화도 피었다.
이삭 줍는 가을도 코앞에 다가왔다. 미술의 시즌도. 어쩐지 마음이 다망(多忙)해진다.
1934.8.24.
『동아일보』, 193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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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를 찾아서 3 ..... 성벽의 훈향
크림빛 둥근 보그미에 들어 있는 빛 좋은 대구 명산(名産)의 임금(林檎). 이것은 어저께 대구의
친우(親友)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다. 임금 한 개를 손에 들고 서재를 들어갔다.서풍(西風)이 드는 서창(西窓)을 열어 제치고 사방을 한동안 바라보았다.다시 마음을 진정하여 제작 중의 작품에 붓을 대기 시작하다가 한 시간쯤 지나 뜰 아래 `베란다`에몸을 의지하고 담배 한 개를 입에 물었다. 눈 앞에 보이는 언덕 위에 회색의 대석(大石)으로 된고색창연(古色蒼然)한 성벽의 묵직한 그림자가 햇빛에 아름다운 광채를 보인다.나는 하염없이 머리가 수그러져 그 무슨 생각에 쓸쓸한 기분에 잠겼다.참으로 저 성벽은 옛일을 말하는 듯 싶다. 저 성벽의 돌에 옛일을 묻고 싶어 묻고 싶어 못 견디겠다.그 배경에는 북한산(北漢山)이 수정 같은 아름다운 봉우리를 보여준다.저물어 가는 장미빛, 하늘빛에 끌려서 또다시 호젓한 길에 산보를 나섰다.위대한 자연의 지도하는 대로 그 무슨 생각에 잠기는 초가을의 저녁 때.천주교당의 종소리 침정(沈靜)하게 흘러온다.1934.8.23.『동아일보』, 193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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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화단의 X광선
우리의 현재 화단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화단뿐만 아니지만 그 중에도 더한 것은 화단이다.
그 원인은 선배가 없으며 경제 방면, 환경의 구속도 있으려니와 회화에 대한 상식과 감상력이 전반적으로 없음이라고 생각된다.이러한 우리조선에서 회화에 대한 무슨 흥미와 이해가 있을 리가 만무하며 자연 빈약한 것은 사실이다.현재 조선 가정에서 화필을 든다면 아버지는'몽둥이'요, 어머니는 눈물로 막으니 미육계(美育界)가 없을 것은 물론이다.우리조선에서 소위 회화에 대한 상식과 감상력이 있다는 사람의 감상과 감정은 무엇을 취하는가?다만 미려한 색채와 사진적 '아카데믹'한 회화를 취하고 있지 않는가? 사실 무리 도 아니다.나는 회화에 대한 근본 문제와 감상론을 말하고 싶으나 후일로 하고 다만 회화는 사진적이 아니며화가의 미의식을 재현시킨 별세계임을 소개하고싶다.나는 종종 이곳에서 듣는 말이 있다. 우리 조선 사람은 무슨 방면이라도 재질은 있으나영구성 즉 '나마케루'한다는 말을 듣게된다. 사실이다.자기 노력의 부족을 모르고 다만 경제 환경만을 '핑계' 삼는 실례(實例)가 많은 줄 생각한다.우리는 앞으로 너무 경제를'핑계'말고 의지 꿋꿋이 정진하여 빈약한 미육계를 세워 나가기를 바라는 바이다.나의 과거를 돌보아도 역시 이해 없는 환경이었으며 경제로 말하여도 구속을 받았다.나의 부친은 한시와 서도를 주장하고 회화에는 절대 반대를 가지고 그야말로 '몽둥이'를 가지고 나올 지경이었다.그러니 자연 경제에도 구속을 받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여 보니 여러 가지 '우스운 일'도 많았다.짤막한 이야기를 하면 어느 일요일 아무리 하여도 야외사생 가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어서 뒷방에서 가만가만히준비를 하여 가지고 뒷담을 뛰어넘어 산격동(山格洞)이라는 곳으로 가서 기쁜 마음으로 하루 종일 사생을 하고 집에돌아오니 부친께서는 벌써 아시고 기다리다가 그만 붙잡혀서 화상(畵相)이며 화필(畵筆)이며 모조리 분지르는 중에그림 그린 것만 가지고 도망가고 말았다. 그 그림을 세계아동작품전에 출품하여 특선을 받았으나 다만 나 혼자 기뻤다.부모는 도리어 노하실 때 서러운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조금도 낙망(落望)치 않고 도리어 의지 굳게 노력하여서조선미전에 <음(蔭)>이라는 작품을 출품하여 당선 영(榮)을 받았다. 그 후부터는 호랑이 같은 아버지도 이해를 가지게 되며따라서 나는 새로운 웃음과 의지를 가졌다.이후 나는 어떠한 작품과 어떠한 일을 할까 하는 데 대하여는 이 다음으로 미루고 싶으며,여러분의 흥미될 만한 회화론과 현대 화단에 대한 사실을 시간 있는 대로 말하고싶다.앞날의 목적 두어 마디이 사람의 목적은 단순합니다. 양행(洋行)할 심산도 있으나 양행한 결과에 자기 작품대성(大成)의 표가 생길는지요?이것도 중대한 문제의 하나로 생각하며 양행은 현대인간의간팜이라고도생각합니다마는나는그렇게 양행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도리어 자기 예술상 개성을 죽이지 않는가 하는 위험한길이라고도 생각합니다.현재 일본화단에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일류작가의 미전춘양회(春陽會)미전 회원들도양행한결과자기개성예술을찾지못한다는언설(言設)이 많습니다. 이럼으로써 춘양회 미전도 해산한다는 말이 있습니다(즉 이때까지 해온 일이 타국인의 모사다). 이럼으로써 예술가 우리는 자기개성을 존경할 필요가 있다고 믿으며자기 향토를 영원히 떠나서는 도리어 실망성이 생기리라고 생각됩니다. 근본적 색채는 어머님의 뱃속에서 타고 나온다.이것이 과연 출생시의 타고난 자연이며 위대한 자연의 힘일는지?앞으로 이 사람은 우리 미육계를 세우는 것이 매일매일 심중의 목적이며 내년쯤 동경 또는 경성에서화실(아틀리에)을 세워서 참된 자기의 개성 작품을 발표할 심산이외다.내년도선전 무감사 출품작은<고도의 산곡>(경주에서 힌트를 잡은)이라는 작품을 발표하려고 제작 중입니다.대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으나 자기화실이 없는 만큼 생각한 작품을 발표치 못하는 것이 하나의 실망이랍니다.이러므로 내년부터 화회를 목적으로 화실을 세울 작정이올시다. 앞으로 자기의 화실을가지고의지굳게화단을세울결심이외다.『신동아』제 39호(1935.) pp.110~111에서 발췌 -
화방수필 - 흰벽
흰 벽(白壁)에 걸린 그림 한 폭이 무한한 기쁨을 줄 때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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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벽에 걸린 그리 한 폭이 무한한 괴롬을 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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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흰 벽에 그림을 떼고 흰 벽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미친 사람 같이 멀거니 바라본다.
나는 과거에 이십여 평되는 넓은 화실에서 자유로운 분위기를 갖추어가며 그림을 그린다는 것 의외(意外)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는 여지도 없이, 매일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직공적 생활을 해왔다.
이때 많은 대작 중에는 <한정(閑庭)>·<경주의 산곡>·<마(馬)>·<해당화>·<녹량(綠糧)>·<호미를 든 소녀상>·
<무(舞)> 등의 작품 -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그 시대가 그리울 뿐이다.
화가에게는 무조건하고 넓은 화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대로 느낀다.
내가 그립다는 것은 옛날의 넓고 넓은 화방을 말하는 것이다 .그 화방 속에서 나는 공간 있는 흰 벽을 늘 볼 수 있었다.
(흰 벽은 새로운 작품의 창작성을 주는 무한한 즐거움의 하나의 화폭인 까닭이었다.)
나는 대작을 할 때마다 화실에 걸린 그림을 전부 떼어 정리하고 넓은 '흰 벽'을 수일 동안 바라보는 행습이 있다.
이 것은 나에게는 유일한 마음의 낙(樂)인 동시에 행복이었다. 가끔 집안 식구들이 미친 사람이라고 말할 때도 있으나
그런 소리에는 하등의 노심(努心)도 없고 오로지 다행이라고 생각될 뿐이다.
나의 생명인 화실을 버리고 서울에 와서 '강짠지'와 '동탯국'을 먹기 시작한지 벌써 7년 간이라는 세월이
어제같이 꿈으로 돌아가고 공간 있는 '흰 벽'을 보지 못하니 자연히 마음이 괴롭고 자유를 빼앗긴 자와 같다.
자유를 빼앗기고 보니 남은 것은 악(惡)뿐인 듯 하다.
그러나 이 '악'은 아직까지 '코리겠다'는 의지에서 오는 나의 정열임에 틀림없는 강한 의지일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나는 매일 '흰 벽'이 있는 공간을 보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볼 수 없는 괴롬에서 헤매임은 사실이다.
조그마한 실내에서 그림을 그릴 때마다 옛 화실이 불끈불끈 생각에 치바쳐
괴로운 심경에서 화필을 던지고 조그마한 마당에 나와서 하늘을 바라보며 긴 한숨 속에서 다음의 '흰 벽'을 희망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괴롬에 어린 눈물이두 눈에 잠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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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술이 있으면 좋은 친구와 함께 마셔야 마음이 풀리고 좋은 그림을 그리면 좋은 친구와 함께 술 마시며
밤새도록 이야기하는 습관이 오랜지라 이젠 좋지 못한 행습을 버리려고 맹서하며 이·삼일 실행하고 보니
여기에서 오는 괴롬이 너무나 의외에도 심경을 더욱 날카롭게 하며 마음의 여유가 없게 되니 자연히 또다시 본체로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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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저래도 나의 천직은 그림을 그린다는 신세인 만큼 그림 속에서 살고 그림 속에서 괴롬과 함께 사라진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나는 누구에게도 자기의 개성을 짓밟히기는 싫다.(양화가)
『신경향』(1950.2), 전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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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를 그리다 Ⅰ
李仁星밀레의 그림이다.고호의 해바라기이다.혼잣말을 하며 보리밭 사잇길을 마음 닿는 데로 걷는다.보리타작의 계절 정말 아름다운 구경거리이다.정말로 [예술적 콤포지션]의 하나이다.다른 나라에는 없는 조선의 보리타작이겠지? 가볍게 장단을 맞추며 [도리깨]를 흔드는 그 순간의 리듬은 얼마나 대륙적인가?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아리랑 멜로디에 귀를 기울이며 다시 걷기 시작한다. 황혼의 들길은 아름답기 그지없다.[정감어린 풍경이다]연못가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해가 지는 것도 모른체 낚시찌를 응시하고 있다.정말 조선이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한가한 팔레트(palette)이다.(스케치 영선 연못에서)출처 :『대한일보』1934년 9월 향토를 그리다. -
향토를 그리다 Ⅱ
스케치와 글 李仁星유채꼿 향기 날리는 세또바람에 실려 고향을 찾았다.적토(赤土)가 한없이 친밀하게만 느껴진다.저 산 저 길을 걷던 시절에는 천진한 천사처럼 "보루"제 사진판을 친구 삼은 시절이었다.공연스레 떠오르는 지나간 꿈의 탑은 한없이 아름다운 것이다.따뜻한 조선의 풍경. 나는 원시적인 느낌을 절절히 음미했다.고대그리스인은 흔히 세계를 코스모스 즉 "미(美)"라 불렀다. 또한 인간의 눈이 갖는 조형적 능력은 만물의 구성,즉 하늘이나 산, 수목, 동물과 같은 원시적인 물상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들에게 일종의 희열을 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즉 윤각, 색체, 운동, 집합에서 오는 일종의 쾌감일 것이다.이 괘감의 반쯤은 군 그 자체에서 기인되는 것으로 생각된다.[눈은 예술중의 예술가라고 말했다.](스케치는 삼각산 경성에서)출처 :『대한일보』1934년 9월 향토를 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