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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이인성(李仁星 1912~1950)의 해당화 - 중부일보
  • 천재화가 이인성
  • 2017.08.05
  • 2,926

 

▲ 이인성, ‘해당화’, 1944년, 캔버스에 유채, 228.5x146cm

1998년 2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술전문지인 ‘월간미술’에서 미술평론가들을 대상으로 ‘근대유화 베스트 10’을 설문했다. 근대기 천재화가로 인정되는 이인성의 ‘경주의 산곡에서’(1935년 작)와 ‘가을 어느 날’(1934년 작)이 1위와 7위를 차지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필자에게도 이인성의 천재성이라는 것이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계기였다. 독학으로 그림을 배워 자신의 독창적 화풍을 수립하고 세월이 흘렀어도 한국 근대미술사의 한 부분을 확고히 차지하며 계속해서 회자되는 이인성은 어떤 화가였을까? 그의 고향인 대구에선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가 있으면 “너, 이인성이 될래?”라는 덕담이 오갔다고 하니 이인성이라는 화가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이인성은 한국 근대미술에 있어서 언제나 ‘향토성’ 논의를 촉발시키는 작가이다. 학자들 간에는 근대 화단에서 향토성에 관한 논의는 조선미술의 하위성을 드러내거나 혹은 그 틀 안에 가두려고 했던 제국주의 일본의 통치수단의 하나였다고 보는 부정적인 시각이 대세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인성은 화가로서의 입신양명을 위해 조선 총독부가 주최했던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스타화가로서 등단했던 화가였다. ‘경주의 산곡에서’는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기까지 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헐벗은 붉은 땅, 벌거숭이로 등장하는 소년과 소녀들, 메마른 수목들은 척박하고 음울하기 그지없던 식민지 조선의 맨살을 그대로 드러낸다. 하지만 딸의 이름을 ‘애향(愛鄕)’으로 지을 만큼 자신의 고향과 조국을 진정어린 마음으로 사랑했고 그리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렸던 이인성의 화가로서의 본심이 그를 명실공히 한국 근대미술의 대표작가로서 자리매김하게 한다는 평가 역시 존재한다. 모순의 시대에 천재성을 지녔던 한 화가의 인생과 예술은 이렇듯 굴곡의 편린들로 조합된다.

이인성이 완숙기에 접어든 1944년에 그린 ‘해당화’라는 이 작품은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쓸쓸한 바닷가, 활짝 핀 해당화 곁을 무심히 지키던 아리따운 소녀들의 분홍저고리와 흰색 스카프는 왜 그리 서러운지. <해당화>는 “회화는 사진적이 아니며 화가의 미의식을 재현시킨 별세계”(이인성, ‘조선화단의 X광선’, ‘신동아’ 1935년 1월호)라 언급했던 이인성의 식민지기 화가로서의 회한과 고독의 정조가 고스란히 담긴 한국 근대회화의 또 하나의 걸작품이다.
 

 

 

최은주 경기도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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