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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누가 천재를 쏘았는가>>, 한국일보 1974. 6. 5.
  • 천재화가 이인성
  • 2017.08.07
  • 3,161

최인호 <<누가 천재를 쏘았는가>>, 한국일보 1974. 6. 5.

         한국일보 1974.6.5.
         젊은이 세계
         누가 天才를 쏘았는가… 

              

         해방직후
         좌익이다 우익이다. 싸움이 벌어져 드디어 정판사건이 터진 서울의 밤 일곱 시께.
         일찌감치 통행금지가 내려진 골목길을 술취한 취객 하나가 걷고 있었다.
         주위의 정적쯤은 아랑곳없이 기분 좋게 취한 그 사내는 비틀거리면서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누구냐. 정지.』
         돌연 거리를 차단하고 있던 치안대원이 지나가던 사내의 발걸음을 막아 세운다.
         사내는 놀란 듯 우뚝 선다.
         『누구냐.』
         『지나가던 취객이요.
         『뭐라구. 지금이 무슨 시간인데 장난하려 들어. 누구야.』
         『취객이요. 술취한 취객이요.』
         사내는 껄껄 웃어제낀다.
         『웃지마라. 누구야.』
         『나말이요.』
         손전지 불 밑에 드러난 사내의 얼굴은 생각 보다는 곱게 생겼다.
         악의없는 참하게 생긴 얼굴이라는 것이 한눈에 드러난다.
         치안대원은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다.
         『뭐라 따지지 말라.』
         『정지. 정지. 누구야.』
         『나말요. 나. 천하의 나를 모르오.』
         『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는 나를 모르오. 난 이인성(李仁星)이요. 천하의 천재 이인성이요.』
         『뭐라구.』
         치안대원은 어이가 없었지만 사내의 기세가 너무나 등등하여 혹시 고위층의 인물인가 행여 겁도 나서
         일단은 치밀던 화를 자제하고 집으로 보내 준다.

         그러나 그 치안대원은 좀체로 치밀던 화가 풀리지 아니한다. 그래서 경비소로 돌아온다.
         『누구 저기 위에 사는 이인성이라는 사람알어.』
         『알지.』
         앉아서 사무근무를 하던 사내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그 사람 뭐하는 사람이야.』
         『뭐하긴 뭐해. 환쟁이지.』
         『환쟁이. 아니 그 자식이 환쟁이야.』
         사내는 뛰쳐 나간다. 그리하여 씩씩거리며 좀전의 사내가 들어간 집 대문을 발길로 걷어찬다.
         『누, 누구요.』
         술취해 자리에 누워있던 이인성은 옷도 채 입기전에 문을 열고 나서려는 순간 사내의 입에서는
         한마디의 욕설이 튀어나온다.
         『더러운 쌕끼.』
         가슴에 품었던 치안대원의 총이 잠결에 튀쳐나온 이인성의 이마를 향한다. 방아쇠를 잡아당긴다.
         『타앙.』


         한발의 총성이 정막을 찢는다. 이인성은 쓰러진다.
         이상은 우리나라가 낳은 천재화가 이인성이 죽는 순간을 나 나름대로 소설체로 표현해 본 것이다.
         이인성은 그렇게 죽었다.


         해방된 조국에서 기쁨에 술취해 돌아오던 이인성은 같은 동포의 총에 맞아 죽었다.
         이인성은 그렇게 죽었다.


         그렇게 죽었다. 그 손끝이, 그 손끝에서 나온 그림이 일본인의 눈을 놀라게 했던 이인성의 마술적 재능이
         총한방에 죽고 말았다. 자신을 서슴지않고 천재라고 표현하던 이인성이 통행금지에 걸려 죽었다.

 

         환쟁이 이인성은 그렇게 죽었다. 하지만 이십년이 흘러간 지금 그의 그림은 남아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천재의 재능을 엿보이게 하고 있다. 여러가지로 따지지 말라.
         예술가가 무슨 특권이 있다고 통행금지 이후에 다닐 수 있담 하고 따지지 말라.


         자기가 뭐라고, 뭐 대단한 인물이라고 통행금지 이후 다닌담 하고 따지지 말라.


         그렇게 말하는 너는, 나는 그리고 우리는 위대한 천재화가를 죽인 사람들이다.


         우리는 십자가를 메고 가는 예수를 찬미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를 향해 돌을 던졌던 바리새인을
         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또한 그 시대에 살아있었다면 그시대의 이단자인 예수에게 침을 뱉고 돌을
         던졌을는지 모른다. 이조백자는 지금에 와서는 위대한 예술품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전에 그들을 백정
         취급하였다. 그들을 따로 살게 했고, 그들끼리 혼인케 하였으며, 열병걸린 전염병환자 취급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빚었다. 그들의 한을 도자기로 빚었다. 수백년 지나서 그 이조자기는 그들을 멸시하였던
         우리들의 유일한 자랑스런 유산으로 남아있다. 우리 문학의 고전도 마찬가지다.


         춘향전도, 흥부전도, 심청전도 멸시받았던 하위계급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구화문학이다.
         말하자면 하위문화들의 소산이다. 그것을 우리는 배운다. 배우고 있다.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다.
         天才는 神이 낳아  왜 그들을 죽은 다음에 추모하는가.


         왜 이인성이 죽은 지금에 그들을 위해 기념비를 세우는가.
         왜 그들을 우리곁에 살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가. 살아서 명동에서, 무교동에서 술취한 이인성을 보지
         못하게 하는가. 왜 살아있는 천재 이인성이 우리 곁에서 시대의 예언을 내려주는 그 신의계시를 듣지
         못하게 하는가.


         나는 아르헨티나의 작가 아소트리아스의 경우처럼 - 그의 집 1㎞ 근처에는 다음과 같은 푯말이
         붙어있다고 한다. 여기엔 우리의 위대한 작가 아소트리아스가 글을 쓰고 있는 구역입니다.


         경적을 삼가해 주십시오 라고. - 거국적인 대접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죽일 필요야 없지 않는가.

         예술가는, 천재의 예술가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는 신에게서 태어날 뿐이다. 왜 신에게서 태어난
         그를 죽여야만 하는가. 나는 총을 쏘지 않았다라고 자위하지 마라. 나는 그 시대에 살고 있지 않았다고
         자위하지 마라. 나는 하층계급을 멸시했던 양반계급이 아니야 라고 자위하지 마라.


         나는 바리새인이 아니니까라고 자위하지 마라. 먼훗날 그대들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예술가와 더불어
         살지 못하고, 예술가를 추모만 했었던 바보와 같은 할아버지들이었다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 김유정은 젊은 나이에 피를 토하면서 폐병으로 죽었다. 암흑과 같은 일제시대였다.
         작가 김유정은 만들어 쓰는 작가가 아니었다. 그는 이야기하듯 자기몸에서부터 체질화되어 글을 쓰던
         위대한 작가였다. 그는 피를 토하면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형아. 나는 날로 몸이 끊어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하여 괴로운 시간을 다 말못하고 누워있다. 그리고 맹열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되겠다. 달리 도리를 차리지 않으면 이 몸을 다시 일으키기 어렵겠다.
         형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승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형아.
         내가 돈 백원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좀 협력해 주기 바란다.
         또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해 보고 싶다. 그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흔히 네가 보던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있는 걸로 두어 권 보내주길 바란다. 그러면 내가 50일내로 번역하여 너의 손으로
         가게 해 주마. 하거든 네가 극력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형아.
         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덧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해서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의 몸이다.


         "돈돈 슬픈일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삼십마리 고아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구렁이를 십여뭇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살아날 것이다. 돈, 돈, 돈 슬픈일이다.


         형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해다오.
         나는 요즘 가끔 웃고 누워있다. 모두 답답한 사정뿐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오. 기다리마.』
         우리는 김유정의 최후의 절규조차 외면하였다. 그로 하여금 우리들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는
         그 간단한 일조차 외면하였다. 그들에게 머리숙여 속죄하라.


         예술가를 추모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위대한 민족은 천재와 더불어 살고 있다.
         이웃으로서 그들의 숨결을 들으며 살고 있다.

 

         <來週水曜字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