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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고흐는 화가고, 이인성은 환쟁이다.>>, 조선일보 1998. 6. 8.
  • 천재화가 이인성
  • 2017.08.07
  • 2,498
김병종 <<고흐는 화가고, 이인성은 환쟁이다.>>, 조선일보 1998. 6. 8.

         近代美術의 거점도시
         39세에 夭折한
         식민지 화단의 별


         글쓴이는 묻는다.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 그리고 스스로 대답한다.
         『우리 곁의 천재를 죽인 것은 너와 나 우리 모두』라고, 『나는 그 시대에 살지 않았다,
         총을 쏘지 않았다 말하지 말라』고.


        허다한 우리 곁의 천재적 예술가를 멸시하고 심지어 죽음의 길로까지 내몰고 나서
         추모비, 기념비 세운다 호들갑 떨지 말라고.
         『너 커서 이인성 되겠구나.』


         한때 대구에서는 그림 잘 그리는 아이에게 「화가 되겠구나」대신 그렇게 말했다 한다.
         그는 거의 독학으로 수채화와 유화를 공부해 열 여덟 나이에 선전(鮮展)에 입선한 이래 연달아 입-특선을
         거듭하고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스물여섯 나이로 선전 추천작가가 되었던 식민지 화단의 별이었다.
         단속적(斷續的)이고 경쾌한 붓터치와 동양화의 파묵법(破墨法, 거친 먹그림 기법의 하나)을 연상시키는
         필세에 토속적 정감 넘치는 소재의 화면들. 그 위에 강한 명암 대비에 의한 미묘한 긴장과 울림,
         넘치는 문학성 등으로 <이인성류>는 선전뿐 아니라 해방 후의 국전 작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는 도시인이었으면서도 우리 산, 우리 물의 아름다움은 물론 심지어 공기의 흐름까지도
         꿰뚫어보고 있었다. 때로는 일상의 풍경에서 암울하고 애잔한 식민지적 분위기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러나…우리는 세잔의 「생 빅투아르 산」은 알아도 이인성의 「경주의 산곡」에는 무지하다. 


         고갱의 「타히티 여인」의 그 원시적 생명력은 예찬하지만 「어느 가을날(가을의 어느날)」의 황막한
         들판에 반라(半裸)로 선 조선여인에는 무심하다. 모네의 「수련」을 누가 모르랴. 


         그러나 이인성의 「해당화」,「백일홍」은 낯설다

         우리는…거의 늘 그랬다.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살리에리의 눈으로 허다한 일본인 화가들이 식민지 청년 이인성의 재능을
         시샘했지만, 나라 안에서 그 이인성은 정작 대구의 「식당집」아들이었을 뿐이다.
         독수리 기개 있게 날개 편 것 같은 팔공산 자락 안의 대구. 일찍부터 근대적 문물세례를 받은 대구가
         섬유와 약령시로 유명한 곳이라는 것은 알아도, 미술 특히 「서양화」가 센 곳이라는 것은
         잘들 모르고 있다. 목포 광주가 전통미술쪽에서 강세라면 대구는 확실히 유화쪽에서 강세이다.

         특히 이인성류의 인상주의랄까의 잔영은 대구미술의 흐름 속에서 아직도 면면이 짚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 근대미술의 주요 거점 도시인 그 대구에는…아직 시립미술관이 없다.
         이인성과 기라성같은 대구 출신 근대미술가들을 위한 공간의 부재 또한 아쉬운 대목이다.
         이인성의 활동 반경을 짚어주는 것으로 봉산 문화거리 입구에 사각의 표석이 하나 서 있을 뿐이다
         (기왕에 표석을 세웠으니 「이인성 거리」로 불러주면 어떨까).


         그가 한때 열었다는 「이인성 양화연구소」가 있던 남산동 33번지 옛 남산병원은 물론,
         20대 후반 경영했다는 「아루스 다방」도 흔적이 없다. 옛 정취와 연결되는 것은 그나마 약전 골목.
         그리고 메마른 도시의 향기같은 한약냄새 끝나는 지점의 계산동 성당. 하늘에 닿을 듯한 뾰족십자가에
         남북으로 길게 익랑(翼廊)을 단 이 고딕식 성당을 이인성은 몇 차례나 화폭에 담았다.

 

         성당 앞에는 석양을 받으며 십자고상(十字苦像)과 함게 키 큰 금송 세 그루가 마치 골고다의 세
         십자가처럼 서 있다. 그림 속에서보다 나무의 키는 훌쩍 더 자라 있었다.


         서쪽 하늘을 물들인 이인성 그림 속의 그 붉은 빛 구도 안에 서 있건만, 천지간에 화가의 자취는

         찾을 길이 없다.


         <글 金炳宗 서울대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