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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 가을 붉은 들판을 걷는 '여인과 아이’ (박순희)
  • 천재화가 이인성
  • 2020.10.31
  • 3,011

 가을 붉은 들판을 걷는 ‘여인과 아이’

-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 (1934)을 중심으로 

   

박 순 희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는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926, 9연 중 각각 1연과 7연 -

 

 

도 1. 이인성, ‘가을 어느 날’, 1934 

 

 

 1930년대 일제 강점기, 국권 잃은 설움을 대지의 애환에 비유하며 

시로 표현한 시인 이상화(1901-1943)의 시 1926년 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화가 이인성(1912-1950)의 회화 1934년 작, ‘가을 어느 날’, 

각각의 시와 회화가 이구동성으로 표현하는  조선의 자주독립을 읽는다.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을 보며

 

‘푸른 웃음’ 가득한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푸른 설움’의 눈물로 피어난 해바라기꽃, 옥수수나무, 맨드라미, 들마꽃이 흐드러지고 

하얀 나비 한 마리 어수룩하게 나는 붉은 황토빛깔로 물든 가을 들판을 본다.

 

여름 내내 태양을 따라 피어나던 해바라기 꽃,

한 때 황금빛 태양만큼이나 눈부셨던 해바라기는 

해바라기꽃씨 영글어 가득 차 고개 숙여 가을 맞을 채비를 한다.

 

함께 여름을 나던 옥수수나무 잎사귀들은 비상을 위해 날개 짓하고

누런 옥수수수염은 하늘 향해 올곧은 대나무처럼 솟아 승리의 깃발처럼 바람에 나부낀다.

 

수확을 앞 둔 들판의 벼 익은 보리밭 가는 길,

잎 넓은 야생초난이 긴 잎사귀 뻗어 길안내 하여

저 멀리 양 팔 벌린 듯 서있는 감나무까지 한 걸음에 닿을 것만 같다. 

 

앙상한 가지 끝에 피어나는 갈빛깔 들마꽃은 

여름까지 피는 키 작은 맨드라미꽃을 안으며 인사하고

멀리 중간 가지가 베어진 감나무까지 볼 수 있도록 길게 자란 휜 가지로 내려다보며 서있다.  

 

무더웠던 여름, 역경의 시절을 뒤로하고 

꿈속을 걸어가듯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여인은 

삼단 같은 검은 긴 머리를 동여 메고,  

간밤에 내린 비로 곱게 자란 황금빛 보리밭 보다 빛나며

마른 논이 비에 젖어 검붉은 옥토 보다 부드러운 황토빛깔 반라를 드러내고서

하얀 치마 허리춤에 걸쳐 입은 채

오른팔에는 노란 수건 걸친 바구니 끼고, 

등 뒤로 한 왼팔 손에는 만개한 흰 다일리아꽃 꺽어 들며

바가지 머리 짧게 자르고 고개 숙인 채 소매 없는 여름옷을 입은 키 작은 여자 아이 앞세워

온몸에 햇살을 받고 가을 붉은 들판을 걷는다.

 

고개를 살짝 치켜들고 있는 여인의 얼굴과 대조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키 작은 여자 아이,

바람이 스쳐간 듯 여인의 오른팔에 끼고 있는 바구니 밖으로 걸쳐 있는 노란 수건, 

그리고 정교하게 묘사한 오른손 손가락 모습과는 달리 

여인의 등 뒤로 엉성하게 표현된 왼팔 손모양 모습에서,

비균형적으로 반동하는 움직임을 보이며 

여인과 아이는 걷고 있다.

 

바람에 옷자락이 흔들리듯 여인과 아이가 걷는 붉은 들판 길 옆으로 

멀리 노란 옥수수수염이 보이는 시선을 앞으로 당기면 소담스럽게 핀 흰 마꽃이 

성큼 다가온 결실의 계절, 가을을 반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보는 ‘가을 어느 날’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는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 이상화의 시, 9연 중 각각 1연과 4연 -

 

도 2. 이인성, ‘가을 어느 날’, 1934 (부분 확대)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 이상화의 시, 9연 중 각각 7연, 8연, 9연 -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나비야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 이상화의 시, 9연 중 각각 2연, 3연, 6연 -

 

 

도 3. 이인성, ‘가을 어느 날’, 1934 (부분 확대) 

 

 

   1연의 시작에서, 얼굴의 턱을 살짝 올리고, 시선은 우방향 아래로 조금 내리며 걷는 여인은 들판에 부는 미풍의 바람 맞으며 가볍게 걷는다. 9연의 맺음으로, 가을의 자연을 맘껏 누리는 ‘푸른 웃음’과. 일제 강점기 시대의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온 종일 걸어 다리가 아플 지라도 걷고 싶은 절박함을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라고 표현한다.’ 

 

  2연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구절에서 시의 화자는 대지의 자연을 대지의 여신으로 분화하여 나타난 인물로 의인화하였으며, 회화의 표현에서는 붉은 들판의 빛깔과 거의 동일하게 여인과 아이를 표현했다. 이구동체의 모습처럼 거리를 두지 않고 가까이 배치하며 아이의 순수함과 여인을 동일시한다.

 

  3연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구절에서 ‘아씨’ 호칭은 가벼운 미풍이 불고 있는 ‘수줍음’의 의미로 볼 수도 있으며, 여인을 시중드는 아이로 볼 수 있어 여인의 신분을 가늠한다.

 

  6연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 구절에서 일제강점기 군화 빨에 짓밟혔던 국토와 국권 상실의 비애를 겪은 암울한 현실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때로는 목적과 방향을 잃은 허탈한 심정으로, 자연으로부터 위안 받는 기쁨은 현실의 슬픔에 비하지 못하겠지만 작은 위로가 커다란 희망되어 시와 회화로 동포애를 나눈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모더니스트

 

  진보적으로 서양화의 예술 기법을 취하며 자주적인 ‘조선의 향토색’을 표현하고자 신문명의 변화하는 모습을 화폭에 담으려 했던 조선의 모더니스트 화가 이인성을 세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동경으로 유학 갔던 시절(1931-1935) 1934년에 이인성은 붉은 황토빛 가을 들판을 걷는 여인과 아이 모습이 그려진 유화 작품 ‘가을 어느 날’을 발표한다. 

 

  유학길에 오르기 전, 청소년문예활동의 성격으로 시작하였으나 후에 대구 지역 최초의 한국인 서양화 그룹으로 명성을 얻었던 <영과회> 사생 때부터 일찍이 청년 이인성의 재능을 알아 본 대구 출신의 소허 (小虛) 서동진(徐東辰) (1900-1970)과 대구 유지들의 후원을 받는다  

 

  서동진은 반식민적인 민족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한국 미술인끼리 결속한 <향토회>를 1930년에 설립하며, 매년 시월 가을에 개최해왔다. 대구 효목동 ‘조양(朝陽)회관’에서 1934년 제 5회 정기전을 마지막으로 열며, 그 해 봄, 일본 조선총독부 주관의 ‘조선미술전람회’(이하, 선전) 제13회에서 특선을 받기도 했던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을 전시한다. 당시 이인성의 나이는 스물두 살이었다.

 

  중국, 만주 등지에서 항일민족운동을 펼치던 서상일이 ‘아침해가 비치는 곳’의 뜻을 담아 세운 조양회관에서 전시하는 그 자체로 일제강점기의 항일 의식을 전면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의의를 같이 한다. 

선전에서 6회 이상의 다수 특선(1929-1935)을 수상한 이인성의 회화를 두고 ‘조선의 향토색’을 논쟁하는 것에는 일본 화법에 맞는 작품으로 선전에만 출전했다는 이유를 들기도 한다. 이인성으로서는 유일하게 현대식의 서양기법을 배울 수 통로가 일본 유학과 선전의 출품에 있었기에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방법에 지나지 않았을까 하는 조심스런 추측해 본다. 

 

  그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조선의 향토색’은 물리적인 황토 빛깔로 표현한 회화가 아니라, 조선의 자주성이 깃든 예술적 표현으로, “조선의 정체성을 찾겠다”는 그의 의지임을 알 수 있다. 세상을 떠나던 해, 1948년 마지막 개인전에서 언급했던 “현재적 전신과 신생활의 활동을 더욱 대담하고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 미술이라고 믿는다”고 했던 그의 말에서 조선의 모더니스트였음을 확인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시인 이상화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광복의 봄을 기다리는 대지를 화자로 표현했지만, ‘가을 어느 날’에서 화가 이인성은 고된 역경의 여름을 이겨내고 결실의 가을맞이를 하는 대지를 여인으로 형상화하며 표현했다. 시의 언어적 상징성과 선, 면, 색으로 표현하는 미술의 조형적 상징성은 다름 아니다. 

 

  ‘가을 어느 날’은 앞서 언급했듯이 1934년 봄에 선전에 출품했다. 화폭에 표현한 가을의 계절과 작품을 출품하고 화가가 실제 살았던 공간이 일본이라는 것을 두고 윤범모(2013)는 ‘계절과 공간의 불일치라는 화면 구성상의 모순을 초래하면서 시대를 증언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인성의 현실인식은 상징적 도구에 의한 연출된 풍경의 세계였다’고 한다. 

 

  1934년 봄에 출품했던 ‘가을 어느 날’ 작품의 내용이 가을을 담고 있다는 것에 포커스를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출품 당시에 어떤 센세이션을 일으켰나에 중점을 두어 본다면 ‘계절과 공간의 불일치’라는 것은 무색해 진다. 그리고 본고에서 시와 회화를 연관 시킨 것처럼 이인성의 예술가로서의 시적 상상력을 엿보는 방법적 접근을 한다면 ‘상징적 도구에 의한 연출된 풍경’이라 표현하는 것 또한 그 의미를 상실케 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왔고, 입추가 지난 가을 어느 날 우리는 광복을 맞이하여, 국권 회복의 전신을 이어간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