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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화가 이인성
- 2017.08.07
- 3,612
이인성 연보 ( 1941~1950 )
1941년 (30세)
-5월, 제19회 조선미전에 <말>, <설경>을 무감사로 출품
-10월 7일~12일, 정자옥 화랑에서 개인전 개최
1942년 (31세)
-5월, 제21회 조선미전에 <사과나무>와 <오월의 연못> 출품
-5월 29일, 부인 김옥순 병사
-남정집을 처분하고 삼덕동 한옥을 구입하여 원룸으로 개조해 아틀리에로 사용
-9월 24일~29일, 대구 공화당에서 제전 입선 10주년 개인전 개최
1943년 (32세)
-3월, 딸 애향이 보통학교에 입학
-5월, 제22회 조선미전에 <꽃>과 <호미를 가지고> 출품
1944년 (33세)
-5월, 제23회 조선미전(마지막회)에 <해당화>와 <춘화습작>을 출품
-중매로 만난 간호사 자격증을 가진 인텔리 여성과 대구 달서동 신궁에서
두번째 결혼식을 올리고 삼덕동 집에서 피로연을 함
-서울에 자주 왔다갔다 하며 상경할 결심을 함
1945년 (34세)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4번지 11호로 이사, 이화여자중등학교(현 이화여고)
신봉조 교장의 권유에 의해 미술교사로 부임하고 미술부 창설
-딸 승란 출생, 두번째 부인 가출
-8월 18일, 조선문화건설 중앙협의회 산하 조선미술건설본부 회원으로 참가
-10월 20일~30일, 덕수궁에서 조선미술건설본부가 주관한 해방기념미술전에 <녹량>을 출품
-10월 15일부터 중도 좌익적 성향을 띤『자유신문』에 연재된 김남천의 소설 「1945년 8.15」의 삽화를 그리기 시작
1946년 (35세)
-2월 조선미술가동맹(위원장 김주경)에 가입하여 박진명과 함께 공동 부위원장에 피선
-6월 28일 『자유신문』에 연재소설「1945년 8.15」의 삽화를 165회로 끝냄
-11월 조선미술동맹이 조선조형에술동맹과 통합하여 조선미술동맹(위원장 윤희순)으로
발족하자 오지호화 함께 공동 부위원장으로 활동
1947년 (36세) -3월, 심형구가 주임으로 있던 이화여자대학교의 서양화부에 시간강사로 출강
-6월 21일, 김하순의 장녀로 배화여전을 나온 창경과 재혼
-8월, 조선미술동맹이 점차 좌익적 성향을 드러내자 탈퇴하고
김인승, 박영선, 남관, 이봉상, 손응성 등 온건파 양화가들과 조선미술문화협회를 조직하여
동화백화점에서 제1회 회원 작품전을 개최
1948년 (37세)
-국화회 회화연구소를 개설하여 수채화와 유화를 지도
-6월 8일~16일, 동화화랑에서 자유신문사 후원으로 개이전 개최
-10월 1일부터 『경향신문』 창간 2주년 기념으로 연재된 박계주 소설「진리의 밤」의 삽화를 그리기 시작
1949년 (38세)
-2월 5일, 3녀 승금 출생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서양화부 심사위원으로 활약하면서 <구화>와 <추화> 출품
-4월 23일, 『경향신문』 연재소설 「진리의 밤」삽화를 163회로 끝냄
1950년 (39세)
-2월, 신경향에 「흰벽」이라는 수필과 삽화 실림
-6.25 전쟁중 피난하지 못한 채 북아현동 자택에 은거, 용산경찰서에 연행되었다가 탈출
-9월 15일, 장남 채원 출생
-11월 3일, 오후 8시경 취중에 시비가 붙었던 경관이 뒤쫓아와 언쟁 중에 잘못 쏜 총에 피격됨
-11월 4일, 숨을 거둠
-11월 6일, 경기도 교문의 아차산에 묻힘,
유족으로 부인 김창경과 장녀 애향, 차녀 승란, 3녀 승금, 장남 채원을 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