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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성 연보 ( 1931~1940 )
  • 천재화가 이인성
  • 2017.08.07
  • 5,829

이인성 연보 ( 1931~1940 )


         1931년 (20세)
         -5월 제10회 조선미전에서 <세모가경>과 <어느날 오후>를 출품하여 대구 중심가의 우체국을
        
배경으로 그린 <세모가경>이 특선을 수상하자 이인성을 화가로 키우자는 여론이 지역사회에 형성됨
         -제 2회 향토회전에 출품
         -고미술 수집 및 연구가로 유명했던 경북여고 교장 시라가 주키치의 후원으로 연말경, 일본으로 유학,
         일본 도쿄의 오오사마 상회 크레용 회사에 입사하여 낮에는 사환으로 일하고 밤에는 그림 공부함

 

         1932년 (21세)
         -태평양미술학교에 입학, 이 무렵 오오사마 상회 사장이 마련해준 아틀리에에서
         석고 데생을 연마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함
         -5월, 제11회 조선미전에 출품한 <카이유>는 특선을, <파란 지붕이 보이는 풍경>과 <어느 날의 숲>은 입선,
         이 중 <카이유>는 일본 궁내성에 매상됨
         -일본 도쿄의 광풍회전에 <풍경><성탑 풍경><습작>입선
         -가을, 제13회 제국미술원전람회(약칭 제전)에 <여름 어느 날>입선
         -제3회 향토체전에 일본에서 그린 작품을 보냄

 

         1933년 (22세) -일본수채화회전에 <곡진유원지의 일우>를 출품
         -5월, 제12회 조선미전에 <곡진유원지의 일우>를 <세토섬의 여름>과 함께 출품하여 입선하고,
         <초여름의 빛>으로 특선, <곡진유원지의 일우>는 이왕가에 매상됨
         -7월 14일~19일, 대구 역전 상품진열소에서 석재 서병오 등 지역 유지의 발기로 개인전 개최        
         -10월, 제14히 제전에 <초가을의 뜰> 입선
         -11월 11일~14일, 도양회관에서 열린 제 4회 향토회전에 출품

 

         1934년 (23세)
         -한 친구로부터 그림 공부를 하고 싶어하던 4살 연하의 김옥순을 소개받음
         -5월, 제 13회 조선미전에 <가을 어느 날>을 무감사로 출품하여 특선하고, <장미>와 <뒷뜰의 일우>는 입선
         -8월, 방학을 맞아 귀국하여 대구에서 머물다가 더위를 피해 서울로 올라와 수채화로 <아리랑 고개>를 제작,
         이때 북한산 일대를 돌며 쓴 글과 스케치를 9월 8일부터 11일까지 3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향토를 찾아서」 라는 제목으로 연재
         -10월, 제15회 제전에 수채화 <여름 실내에서> 입선
         -11월 22일~24일, 대구 역전 상품진열관에서 열린 제5회 향토회전에 출품
         -12월 17일 김옥순의 조부 얼굴을 그림

 

         1935년 (24세)
         -1월호 『신동아』에 1934년말 자신의 회화관에 대해 쓴 「조선화단의 X광선」이 실림
         -제22회 일본수채화회전에 <아리랑 고개>로 최고상인 일본수채화협회상을 수상
         -귀국을 앞두고 동경의 오오사마 상회를 퇴사
         -5월, 제14회 조선미전에 <경주의 산곡에서>로 최고상인 창덕궁상 수상, 수채화인 <고목이 있는 교외>는 입선
         -6월 7일, 김옥순과 대구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대구시 남산정 333번지 남산병원 3층에서 살기 시작함
         -11월 1일~5일, 이비시야 백화점 2층에서 총50점의 작품으로 작품발표전 개최,
         이 전시회는 일본 작가들과 함께 결성한 토요회 소품전도 병행함
         -11월 7일~10일, 이비시야 백화점 2층에서 열린 제6회 향토회전에 출품

 

         1936년 (25세)
         -1월 25일~2월 11일 제 23회 일본수채화회전에 <복숭아 나무>, <남선의 가을>출품
         -5월 20일, 장인 김재명이 마련해준 남산병원 3층 아틀리에에 대구 최초의 양화연구소를 개소하여
         학생들을 지도하기 시작, 일본 화단에서 수채화로 유명한 카스가베타스쿠(1903-1985)가 연구소에
         2개월간 체재하면서 함께 지도를 함
         -5월, 제15회 조선미전에 <과수원의 일우>를 무감사로 출품하고, <초춘의 산곡>으로 총독부상 수상
         -6월 장녀 애향 출생, 부인 김옥순 의상 공부를 위해 다시 도쿄로 떠남
         -제 1회 토요회 수채화 전람회에 <추일소경>을 출품
         -7월 15일~20, 대구 역전 상공장려관에서 열린 남조선미술전람회에 진열 위원으로 <여름정원>을 비롯한 수 점 출품
         -10월 문전에 <한정>을 출품하여 호평 받음

 

         1937년 (26세)
         -5월, 제 16회 조선미전에서 동양화부의 김은호와 함께 서양화부의 추천작가가 되어
         <한정>을 무감사 출품하고, <초상>은 입선
         -이 무렵 남정으로 이사하고 마당 한 쪽을 개조하여 순수에술 다방을 표방한 아르스(ARS)를 개업
         -10월 28일, 다방 아르스에 걸어놓은 100호짜리 2폭으로 된 <한정>훼손된 소동발생
         -아들 영미 출생

 

         1938년 (27세)
         -5월, 제17회 조선미전에 추천작가 자격으로 미완성작 <춤>출품
         -11월 3일~8일, 동아일보사 주최로 동아일보사 3층에서 개인전 개최
         (수채화 20점과 유화 25점 전시)

 

         1939년 (28세)
         -윤복진의 동시에 윤태진이 곡을 붙인 동요집 『물새발자욱』(교문사 발행)의 표지화를 판화로 제작
         -5월, 제18회 조선미전에 추천작품으로 <뒷뜰>을 출품하고, <애향>은 입선
         -8월 23일, 아들 영미가 뇌막염으로 사망
         -제3회 신문전에 <복숭아>입선


         1940년 (29세)
         -5월, 제19회 조선미전에 <녹량>과 <춘화> 출품
         -7월 8일, 둘째 딸 귀향이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 사망
         -10월, 삼월관에서 심형구, 김인승과 조선미전 추천작가 3인전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