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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 고도의 풍재를 뒤로하는 적토 위의 탄식, 그리고 염원 (박순희)
- 천재화가 이인성
- 2020.11.06
- 5,838
고도의 풍재를 뒤로하는 적토 위의 탄식, 그리고 염원
- 이인성의 ‘경주 산곡에서’ (1935)를 중심으로 -
* 풍재(風裁) : 바람 풍, 마를 재; 격에 맞는 멋
박 순 희
E. 마네의 ‘늙은 악사’에서 ‘픽처레스크 슬럼’을,
P. 세잔이 저 멀리 생 빅투아르 산을 바라보듯 다시점을,
P. 보나르의 빛의 산란과 압도적인 색채 구성력을
모던 라이프를 표현하던 현대 화가들의 회화기법을 종합적으로 재구성한
조선의 모더니스트 화가 이인성의 ‘경주 산곡에서’
도 1. 이인성, ‘경주 산곡에서’, 1935
저 멀리 시선을 두면 가운데 첨성대와 옛 궁궐 동궁이 나란히 보이며, 좌우측 양쪽에는 산줄기가 굽이굽이 흐른다. 남산에서 바라본 산줄기의 아름다운 능선을 따라 신라 유적의 풍재(風裁)는 유유자적하지만, 적(赤) 빛으로 물든 소년들의 표정은 옛 찬란한 고도(古都) 신라 왕조의 유산 앞에서 왜 이다지도 슬픈 탄식으로 다가오는가.
이인성은 ‘경주 산곡에서’, 현대 서양회화 기법의 종합적 재구성의 극치를 선보이며,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 최고상 창덕궁상을 수상하였다. 세 가지로 간추려 보는 현대회화 기법을 확인하기에 앞서 1930년대 일제강점기 국난의 뼈아픈 설움과 탄식 너머로 국권 회복을 위한 민족 염원의 현실을 확인해 보자.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 윤동주, ‘참회록’, 5연 중 1연, 1948
저항시인 윤동주의 1948년 작, ’참회록‘의 시 한 구절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를 떠올리며. 이인성의 ‘경주 산곡에서’ 전경 우측 왼손 엄지와 검지손가락 사이에 피리를 쥐고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은 청년의 시선을 따라 발치에 흩어져 있는 깨진 조각 파편들을 바라본다. 깨진 파편들을 이리저리 맞춰보면 연꽃무늬가 새겨진 와당(瓦當)과 비슷한 신라 불교유적 불상 하단 대좌와 광배를 장식하는 연꽃무늬가 그려진다.
윤동주의 시 구절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이 지칭하는 청동구리 역사 유물은 조선시대에 해당한다. 이인성(1912-1950)과 윤동주(1917-1945)의 각각 회화(1935)와 시(1948), 작품 제작 시기는 10여 년의 간격을 두고 있지만, 암울했던 우리 민족의 일제 강점기(1910-1945)에 겪었던 비극은 인적 물적 자원의 약탈을 일삼았고 창씨개명의 뼈아픈 오명을 남기는 수치스러운 욕됨, 그것들에 대한 예술가로서, 시인으로서 참회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인성의 조형적 표현에서 그것은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역사와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경주 남산 위의 공간 묘사, 적토 위에 깨진 조각을 넋 없이 바라보고 있는 청년의 시선과 엇갈리게 후경의 신라 유적들과 붉은 말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중경에 서있는 갓난아기를 업고 있는 어린 소년의 시선이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소년이 경주 월성 쪽을 바라보며 지시하는 시선은 조형미로 살린 하나의 연결고리가 된다. 그것은 월성의 유적들과 남산 위의 깨진 조각을 종합적으로 해석해 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일제강점기, 1930년대를 기점으로 더욱 강화되었으며 1940년대부터는 본격화된 식민지 지배, 강제 징집되어 전쟁터로, 군수공장으로 가야만 했던 아버지 어머니가 부재하는 현실이다. 사회전방위적으로 수탈과 약탈이 난무하던 시절, 이인성의 ‘경주 산곡에서’, 갓난아기 동생을 돌봐야 하는 어린 소년, 그리고 적토 위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조각 파편을 넋 없이 바라보는 청년의 모습이 곧 시대의 현실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이 수탈되는 시대의 참상이며, 핏 빛 설움으로 물든 적토 위의 탄식을 도굴의 흔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1930-40년대 우리나라 전국 곳곳에서 불법 도굴과 매매가 성행하여 고미술품과 고분 도굴의 뒷거래 또한 무수하게 일어난 사실에 연유한다.
‘황금의 나라’ 신라의 고분에는 ‘금제유물`이 다량 출토되었으며, 북방 유목민과 밀접한 관계를 추정할 수 있는 역사적 사료로도 쓰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로 천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신라 고분양식의 특징으로서 여러 겹 돌과 흙을 쌓은 고분의 경우 일부 보존되고 있다. 고대 신라 유적의 수난, 하나의 예를 보자.
도 2. 이기환, 「신라왕릉, 도굴에서 살아남은 비결」, 제공,
신라 적석목곽분 4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기에 풍미한 고분 양식
도 2, 신라 적석목곽분의 구성체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목곽에 돌을 쌓아 둘러싼 적석(積石)부 외층에 또다시 봉토로 두텁게 쌓은 신라의 고분유적은 일부 남겨져 있지만, 유사한 형태로 세운 고분의 도굴은 무자비했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도굴하려면 갱도를 뚫어야 하는데 그 엄청난 돌과 흙을 감당할 수 없죠, 곧 무너져서 생매장될 수밖에 없으니까....“라고 말한다. (출처, 이기환, 「신라왕릉, 도굴에서 살아남은 비결」, 경향신문 투고)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에서 적석은 ‘쌓은 돌’을 의미하며, 봉토 부분은 흙으로 덮여 있다. 특히 산중의 흙 빛깔은 자연의 토양을 먹고 자라 수분을 적절히 머금고 있는 짙은 황토색의 적 빛을 띤다. 이인성이 ‘경주 산곡에서’ 표현한 흙의 빛깔은 태양에 수분이 마른 연한 황토빛깔의 흙이 아니라, 흙이 파헤쳐졌을 때 보이는 짙은 적 빛의 황토 빛깔이다.
고도의 수도 경주는 현재 총 5개 경주역사유적지구로 나누어 세계문화유산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 도 3, 월성지구 전경 좌측 순서대로 첨성대, 안압지 동궁, 황룡사지 절터가 있다.
도 3. Ⓒ네이버 캐스트 ‘경주역사유적지구’ 제공, 월성지구 전경
실제 첨성대의 동남쪽 방향에 위치하는 남산에서 내려다 본 것을 ‘경주 산곡에서’ 묘사하고 있듯이 첨성대, 별궁의 동궁, 그리고 절터만 남아있는 황룡사지 절터가 나란히 보이는 지리적 위치는 동남쪽 방향에 있는 남산일 수밖에 없다. 고도 경주 유적지를 소환하기 위하여 깨진 조각을 전경에 표현한 것이 아니라, 약탈의 역사, 도굴을 역설하기 위하여 후경에 신라 유적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관성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연구에서 조각 파편을 두고 와당이라고 하는데, 와당은 추녀 끝에 덮는 기와로서 연꽃무늬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단순히 와당이라고만 하는 것은 이인성의 이 작품 연구를 제한해버리는 일이다. 불교 유적의 불상이 다수 곳곳에 세워져 있는 남산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고려해 볼 때, 깨진 조각은 불상의 하단 대좌와 광배에 주로 장식되었던 연화문양의 파편으로 추정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인 분석이다.
옛 왕궁이 자리하던 월성은 국가 수호의 군 인력을 보충할 병력 확보와 이를 통한 인재 양성을 위하던 화랑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동궁 우측 움푹 파인 듯 평지로 표현된 황룡사지 절터에서 산 아래로 내려오면 보이는 붉은 말의 의미가 한층 더 명료해지면서, 붉은 말이 있다는 것이 그다지 생경하지 않다. 붉은 말은 고전역사소설 ‘삼국지연’ 속 일화, 김유신의 적토마(赤兎馬)의 후예로서 화랑의 기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연상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비극의 역사 속에서 화랑정신을 담은 민족의 염원과 기백을 조심스럽게 표현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수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소년과 청년의 모습을 반추하며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로도 읽을 수 있다. 도 6. 화랑도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고구려 무용총 고분벽화에서 발견된 ‘기마 수렵도’이다. 삼국 통일의 일등공신 김유신의 일화 속에 나타나는 적토마, 그의 나이 18세에 화랑의 우두머리 국선이 되어 펼친 업적에 비추어 볼 때 ‘기마 수렵도’는 ‘화랑도’의 기원이 될 수 있다. 그 얼을 이어받아21세기 경주는 ‘화랑마을’로 복원하였다.
풍재와 탄식, 이중의 공간
화폭의 전체 구성은 청회색 빛깔 하늘과 붉은 산곡 사이 지상의 인물과 사물들은 다소 이질적인 요소들로 배치하고 있다. 후경의 아름다운 능선의 자태를 뒤로 하고 좌측 중간에서 우측 하단방향으로 기울어지는 횡선을 그어보면 두 개의 공간으로 구분되는데, 사선 방향의 공간 분할의 비율은 가히 혁신적이다.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눠 보자면, 전경은 1930년대 조선의 비극이 느껴지는 암담한 현실의 모습을 적토(赤土) 위의 탄식으로 볼 수 있고, 산곡 아래 중경과 후경은 고도의 신라 유적으로 그 찬란함을 회고하게 한다.
도 4. 이인성, ‘경주 산곡에서’, 1935
이인성이 1935년 1월호 신동아에 기고한 글, ‘조선 화단의 X 광선’에서 “다만 회화는 사실적이 아니며 화가의 미의식을 재현시킨 이 점이 별세계”라고 밝히는 만큼, 시공간의 사실적 재현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조형적 미의식을 재현한 것이다.
향토색을 땅의 흙, 적 빛에만 국한 시킨다면, 이인성은 “왜 땅에 관심을 가졌을까?”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 땅은 시대적 현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국토를 상징한다. 바로 국토의 국권을 빼앗긴 민족의 설움이며 이인성이 주시한 향토색의 적토(赤土)는 외관적으로 표현하기로는 적 빛 흙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더욱 깊다. 적 빛을 조선의 향토색으로 비유하며 이인성의 적토(赤土)를 향토색에 국한하여 논할 것이 아니라, 시골 전원의 지방이라는 장소적 특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흙이 적 빛을 띠는 경우에는 비 온 뒤 비에 젖은 흙이거나, 흙을 파내어 땅 속 흙을 파내었을 때 볼 수 있다. 즉 도굴 되었을 때 흙은 수분기가 있어 더욱 적 빛이 선명하게 보일 때이다. 이인성은 이때의 적 빛을 포착하여, 무표정하거나 침울한 표정으로 감지하며 소리 없는 설움의 탄식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가 된다. 이것은 1930년대 국내 고분 도굴이 성행했던 시기와 연관하여 볼 때, 후경의 신라 유적지, 붉은 말, 깨진 조각, 분노에 찬 듯 침울한 얼굴, 무표정한 얼굴 등으로 서로 엇갈려 있는 사람들로 구성한 것에 대한 이인성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서양 현대회화 기법 1; ’픽처레스크 슬럼‘, 서로 마주하지 않는 시선들
경주 남산의 산곡에서 출발하여 좌측 소나무 아래 쌓여 있는 조각 파편을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바라보는 청년을 하나의 그룹으로, 산곡에서 첨성대가 있는 쪽을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을 따라가면 후경으로 이어지는 그룹, 그리고 후경의 신라 유적 그룹, 세 그룹으로 나눠진다. 언뜻 보기에는 상호 연결되지 않지만, 전체적 구성을 상호보완적으로 해석하면 이해 가능하다.
이인성의 ‘경주 산곡에서’ 19세기 프랑스 화가 E. 마네의 ‘늙은 악사’를 연상시키는 현대회화 기법 ‘픽처레스크 슬럼 a picturesque slum’의 활용으로 모든 인물의 시선이 각각 엇갈려 있는 모습과 시대의 리얼리티에 근거한 회화의 종합적 구성력에 있다. 마네 스스로 개별적인 인물들의 아이러니한 집합체를 구현한 것을 ‘픽처레스크 슬럼’이라 불렀다.
도 5. E. Manet, ‘The Old Musician’ 1862 / 도 6. 이인성, ‘경주 산곡에서’, 1935
각각 분산되어 상호 의미를 둘 수 없는 이질적인 것들의 종합적 구성, 도 5. E. 마네의 ‘늙은 악사 The Old Musician’와 도 6. 이인성의 ‘경주 산곡에서’ 모든 인물들의 시선이 서로 마주치지 않게 각각 엇갈려 있는 시선의 구성은 1860년 당시 프랑스의 변혁의 시기와 1930년대 조선의 시련이 닮아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네의 ‘늙은 악사’에서 캔버스 중앙에 앉아 있는 늙은 악사와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집시 소녀는, 이인성의 작품에서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피리를 쥐고 있는 청년과 갓난아기를 업고 있는 소년의 구성이 거의 흡사하다. 각각의 개별적인 개체들의 종합적 구성으로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것은 이인성이 일본 유학 시절 서양화법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한 흔적으로 볼 수 있다.
마네의 ‘늙은 악사’에 표현된 인물들은 나폴레옹 3세의 도시계획이 추진된 파리의 현대화로 도시의 빈민가로 밀려난 사람들로서 거리의 늙은 악사, 유대인, 넝마주이 술꾼, 집시소녀 등을 하나의 캔버스 안에 종합적으로 구성하였다. 인물들은 실제 연관성이 없는 개별자이다. 중앙에 앉아 있는 악사, 장 라그네는 오르간 연주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집시밴드의 리더이며, 마네의 <압생트 마시는 청년>의 모델이기도 했던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 콜라뎃은 폐철 수거 넝마주이다. 그 옆 반쪽만 묘사된 인물은 유랑하는 유대인, 그리고 갓난아기를 보살펴야 하는 어린 집시 소녀를 표현하였다.
이인성의 ‘경주 산곡에서’도 약자들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1930년대 일제강점기 황국신민화로 얼이 빠진 현실의 모습을 구사해 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도 7. ‘경주 산곡에서’ 부분 확대 중앙부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는 청년의 왼손에 쥐고 있는 막대기처럼 보이는 것이 엄지와 검지손가락 사이에 살짝 쥐고 있는 가벼운 소재의 피리임을 알 수 있다. 피리의 주입부에 살짝 동그랗게 두드러진 원형 모양이 나타난다. 보통 피리를 부를 때 잡는 포즈와 비슷하다.
도 7. ‘경주 산곡에서’ 부분 확대
그리고 이 청년이 피리 부는 악사임을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입고 있는 흰색 바지허리 부분에 표현된 흰색 대대 부분이 평범한 모양새가 아니다. 악사이면서 동시에 무용수로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그의 맨발이다. 가무(歌舞)를 하는 젊은 청년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월성 궁궐을 수호한 화랑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신라 향가(鄕歌) 중 ‘해가 둘 나타나서 열흘 동안 없어지지 않아’ 도솔가(兜率歌)를 지어 부른 월명이 피리를 잘 불렀다고 한다. 도솔은 미륵을 지칭한 말인데, “미래불로서의 미륵불을 모시는 단을 모아놓고 찬불가(讚佛歌) 도솔가를 불러 미륵불을 맞이한다는 신라 향가 속 이야기에 전한다.
도 8. ‘경주 산곡에서’ 부분 확대
말하자면, 이인성은 피리를 들고 있는 청년의 모습을 통하여 국권 침탈의 회복을 염원하고 기원하는 청년의 모습으로 형상화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도 8. ‘경주 산곡에서’ 부분 확대 깨진 조각 옆에 파손되어 보이는 단은 ‘미륵보살의 기단’이라는 것에 무게감이 실린다.
서양 현대회화 기법 2, 세잔이 생 빅투아르 산을 바라보듯
말년의 세잔이 20여 년 동안 관찰하며 그의 예술계의 결정체로 남겨진 ‘생 빅투아르 산’ 연작, 순간의 편린들로 쉼 없이 변하는 자연의 리얼리티를 구현하고자 산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점을, ‘경주 산곡에서’는 원경의 산과 근경의 소나무와 식물로 회화의 전체적인 프레임을 구성한다.
도 9. P. Cézanne, Mont Sainte-Victoire with Large Pine 세잔의 회화 기법의 완성이라 볼 수 있는 생 빅투아르 산 풍경의 연작에서 캔버스의 전체적 프레임을 차용한다. 세잔이 소나무 아래에서 생 빅투아르 산을 바라보던 방법과 흡사하게 ‘경주 산곡에서’ 또한 후경 저 멀리 보이는 산의 위치와 좌우로 서 있는 소나무로 프레임 만들며 다시점 구성방식으로 현대회화의 기법을 유감없이 표현하고 있다.
도 9. P. Cézanne, Mont Sainte-Victoire with Large Pine, 1887 / 도 10. 이인성, ‘경주 산곡에서’, 1935
도 10. 이인성은 ‘경주 산곡에서’ 원경의 산들과 근경의 인물 구성 사이에 있는 중경에 붉은 말이 있는 곳의 표현을 축지법으로 닿을 수 있을 만큼의 사물의 크기 차이만 있을 뿐 공간의 시각적 표현은 배려하지 않았다. 적토(赤土) 위에 각각의 사물들은 크기와 방향만을 다르게 하여 거기에 있음만을 표현하며 2차원 평면성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전경의 좌측 소년의 시점은 수평이지만, 우측 청년의 시점은 위에서 아래로 보는 시점을 가리킨다. 후경 좌측 희뿌옇게 구름 낀 산등성은 분명 남산 산곡에서 바라본 시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운데 첨성대와 안압지 동궁의 시점은 위가 아닌 수평의 시점으로 표현되어 각각 오브제들의 다시점을 나타내고 있다.
세잔의 생 빅투아르 산 연작을 보면, 산이 갖는 묵직함 보다는 원경과 근경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 지나는 바람의 통행을 느낄 만큼 여유롭다. 분명, 유화임에도 불구하고 수채화 같은 느낌이 가시지 않는 것은 빛이 사물에 닿음을 인식하는 화가의 눈을 믿으며, 회화로 표현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선에 전복 당하지 않고 터치한 각각의 엷은 면들이 겹침에 따라 축적되어 나타나는 수채화기법을 활용한 세잔만의 기법을 구현한 것이다. 그것은 세잔이 가스케와의 대화에서 논한 바와 같이 하나의 붓 터치를 하기 위해 20분 이상을 기다린 다음에야 비로소 다른 컬러를 칠하여 둔탁하지 않은 투명함은 공기가 향기가 있는 생생함을 담기 위한 세잔의 철학이 담긴 것이다. 아쉽게도 이인성의 회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색채 표현은 보나르의 기법을 따랐기 때문일 것이다.
서양 현대회화 기법 3, 빛의 산란과 압도적인 색채 구성력
태양 빛의 산란으로 햇볕에 반사되거나 그늘져 자세히 보이지 않는 P. 보나르의 인물 표현과 이인성의 ‘경주 산곡에서’의 인물표현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게 하나의 덩어리처럼 표현하면서도 인물의 자세를 통하여 섬세한 심리 표현 또한 빼놓지 않고 표현하는 방법을 취한다.
도 11. P. Bonnard, ‘Before Dinner’, 1924 / 도 12. P. Bonnard, ‘Landscape’
도 11. 보나르의 ‘저녁식사 전 Before Dinner’의 화이트 식탁 위에 물들어진 저녁노을이 엷은 옐로우-갈색빛으로 빛나고 있으며, 등 돌려 앉아 있는 여인과 식탁을 앞에 앉은 여인 서로 엇갈린 시선을 하며 침울한 분위기를 감지하게 한다.
이와같은 보나르의 표현은 이인성의 ‘경주 산곡에서’도 나타나는데,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서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는 청년의 얼굴표현과 갓난아기, 그리고 갓난아기를 업고 있는 소년, 모두 햇볕에 가려지고 반사된 듯 하나의 덩어리로 형태만을 보이며 표정의 선명함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이인성의 ‘경주 산곡에서’ 갓난아기를 업고 있는 소년이 바라보는 방향의 중경에 위치한 붉은 말 표현이 보나르의 도 12. ‘풍경화 Landscape’ 작품 속, 분홍빛깔 드레스를 입은 소녀 혹은 여인 오른쪽에 보이는 푸른 빛깔의 개의 표현과 오버랩 된다. 도 15. ‘풍경화’에서 주목해서 봐야 하는 것은 공간 표현이다. 바로 이인성이 차용한 것으로서 주요 공간 및 사물을 표현하는 압도적 색채 구성력이다. 이것은 평면성의 몰입을 상승시키는 효과이다. 그린 빛깔의 들판을 하나의 주조 색으로 공간의 주목성을 높이고 있다.
현대미술 기법에 더한 이인성의 모던한 사고
일본 유학 중에 이인성은 서양회화기법을 습득하는데, 유럽에서 배워 온 일본 유학파들이 보여주는 인상주의, 큐비즘 등의 회화기법들을 수용한다. 이를 표현하기 위한 작업 구상의 연구를 위하여 1934년 가을, 작품 ‘가을 어느 날’ 국내 전시 참가를 하며 서울의 북한산 일대와 우리의 고도(古都)의 문화가 있는 경주 일대를 기행하며 1934년 9월에 「향토를 찾아서」 연재기행문을 신문에 기고했다. 1935년에 발표할 ‘경주 산곡에서’를 위한 습작을 했다.
자주성과 독창성을 내포하는 붉은 적토의 빛으로 1934년도에 발표했던 ‘가을 어느 날’에 이어 1935년 ‘경주 산곡에서’를 발표한다. 고대 신라 문명이 숨 쉬고 있는 ‘격에 맞는 멋’, 풍재(風裁)의 미를 품고 있는 신라 유적과 역사의 장엄함을 목도하며, 수탈과 약탈로 얼룩진 국토의 탄식을 정면에 내세우면서도 기백과 염원을 담았다. 작품 곳곳에 표현한 첨성대, 동궁, 붉은 말, 청년이 가지고 있는 피리와 일제강점기라는 시기를 상호 보완적으로 해석해보면, 다시 국권을 회복하고자 숨죽여 기도하는 희망으로, 염원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탄식은 말을 타고 활을 쏘던 당찬 화랑의 기백을 재확인하며, 어린 소년이 바라보는 다음 세상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경주 산곡에서’ 표현된 “깨진 기와를 바라보는 소년의 우울한 시선을 두고 신라의 패망과 상실감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고 한다. 1900년대 국난의 시기에 신라의 패망을 조선의 패망으로 등치하여 보는 시각은 비관적인 단순 조합에 지나지 않는다.
회화에서 적(赤) 빛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던 대표적인 화가는 아마도 고갱이지 않을까 싶다. 이인성의 회화 풍을 대다수 고갱의 화풍과 닮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가 바라본 이인성은 모던 라이프를 화폭에 닮은 선구자들의 현대회화기법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경주 산곡에서’는 무려 세 가지 이상의 현대회화기법을 재구성하여 종합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인성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것은 ‘경주 산곡에서’ 활용된 세 가지 현대회화 기법을 필자는 마네의 이질적 구도, 세잔의 다시점, 보나르의 색채표현으로 뽑는다. 변화하는 현대회화 기법을 정확히 꿰뚫고 있으며 그 기법들을 활용한 새로운 구성력으로 짜임새 있게 독창적으로 재해석하는 모던한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한 모더니스트이다.